Seochon Brand Week - Exhibition Interview


60년의 시간과 그리운 골목이 담긴 서촌의 기억


정광헌 작가


작가 소개
정광헌 작가는 6·25 전쟁 중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서울 종로구 누상동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서촌에서 국민학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4학년 때 육군 입대로 서촌을 떠났습니다. 삼성물산(종합상사)에 입사하여 독일주재원으로 파견되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외무역에 종사하다 임원으로 퇴임 후, 국내 상장회사의 CEO와 동부 그룹 동부 LED의  대표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작가 소개
전쟁 직후 모두 힘들게 살아가던 1960년대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서촌의 모습과 그 시대의 생활상뿐 아니라 언덕에서 구르다 쇠똥구리를 만난 두 세 살 적의 첫 기억부터 20대 청년이 되어 대학 재학 중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후 군에 징집되기까지 우리나라의 굵직한 현대사가 포개져 그려져 있습니다. 수출의 역군으로 지구촌을 누비던 작가는 70대에 접어들어 가난하지만 따듯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정감있는 그림들로 그 시절을 복원해냈습니다. 독자들은 작가의 놀랍도록 세밀한 기억이 되살려낸 60여 년 전 서울의 서촌, 그 풍속화 같은 장면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 위 콘텐츠는 서촌 브랜드 위크 기간 중 오프라인 전시로 소개되었습니다.

Q.
<서촌을 그리는 마음>과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광헌 : 4살 때 서촌으로 이사해 초, 중,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수출이 국가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말에 동감하여 은퇴할 때까지 해외 무역 분야에서 종사하게 되었어요. 퇴직 후에는 그림과 글을 쓰던 중 뜻밖의 출판사의 권유로 2023년 7월 <서촌 그리는 마음>을 출간하게 되었어요.


Q.
서촌에서 활동했던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나요?

장광헌 : 서촌의 좁은 골목길에서 나눈 소중한 사람들과의 우정과 교훈 그리고 경험은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서촌 골목 골목에서 펼쳐졌던 인연과 이야기는 지금도 나의 마음을 기쁨의 향수로 가득 채우며, 오래도록 흔적을 남깁니다.


Q.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나요?

장광헌 : 저는 먼저 그림을 그리고 나서 글을 써요. <통인시장 가는 길>을 책 출판 전에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많은 분이 “그림 속 지물포 앞에 서 있는 남자가 60년 전 그 지물포 주인과 똑같이 생겼다” 며 반가운 전화를 주셨어요. 그분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계셨던 것이지요. 이렇게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Q.
서촌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책읽기 장소 혹은 산책코스를 추천해 주세요.

장광헌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는 경복궁역에서 종로도서관을 지나 인왕산 정상(338.2m)을 거쳐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와 서촌을 걷는 길이에요. 인왕산 정상에서 잠시 쉬며 서촌을 내려다보면, 정겨운 골목골목마다 깃든 옛 이야기들이 떠올라 저를 즐겁게 합니다.


Q.
저자는 수필가로 알려져 있는데, <서촌 그리는 마음>책을 쓰게 된 계기와 책 속 그림까지 직접 그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장광헌 : 팬데믹의 어두움이 선사한 남는 시간에 나는 지난 기억을 되돌아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완성된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듯해졌어요. 그리고 그림 속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림과 함께 블로그에 올렸어요. 아무리 많은 글도 한 장 그림 속 이야기를 모두 담기에는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배운 적 없는 내 스타일의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어요.


Q.
서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인가요?

장광헌 : 인왕산은 제 작업에서 가장 깊은 의미를 지닌 산이에요. 정상에 오르면 서촌이 미니어처처럼 펼쳐져 있고, 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요. 나의 희망은 이 글이 개인 회고록을 넘어 과거를 재조명하고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더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에요.

Q.
<서촌 그리는 마음>에 기록된 사건 중 아직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장광헌 : 인왕산 기슭에 우리를 눕히고 나뭇잎으로 풀피리를 불어주시던 선생님이 문득 그리워졌어요.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어요. 어렵게 미국에 사시는 선생님의 처남에게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물었더니, "매형은 한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사모님 연락처라도 부탁드렸지만, 왠지 알려주려 하지 않았어요. 그 후 수소문 끝에 서울에 사시는 선생님의 아들과 연락이 닿았으나, 사모님과의 만남도 차갑게 거절당했어요. 이유를 묻자 "어머니께서 노환이 깊어 다른 분을 뵐 수 없는 상태입니다"라는 말에, 할 말을 잃고 머리가 멍해졌어요.


Q.
<서촌 그리는 마음>에서 실제 등장인물도 등장하는데요.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장광헌 :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서촌을 떠났고,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은 소수에 불과해요. 책이 출간된 후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이웃집 식구들과 반가운 연락이 닿았지만 한때 서촌의 거리와 동네의 풍경을 채웠던 야경꾼, 넝마주의, 굴뚝소제부, 똥퍼 아저씨, 시내버스 안내양, 두부장사의 종소리, 찹쌀떡 장수, 칼갈이 장수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아요. 골목길은 남아 있지만, 옛 주민 중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Q.
책에는 서촌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게 나와있는데요. 과거 저자가 기억하고 있는 서촌과 지금의 서촌은 어떻게 변하였나요?

장광헌 : 인왕산 능선을 따라 좌우로 펼쳐진 모습은 여전히 변함없어요. 그러나 골목골목을 들여다보면, 아담했던 옛 가옥들은 헐리고 연립주택들로 가득 차 있어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옛 모습 그대로인 친구 집 앞에 이르러 반가움에 환호하기도 전에, 문 앞에 걸린 낯선 '세탁소'  간판을 보고 잠시 멈춰 서요. 이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낯선 얼굴들이에요. 서촌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만나는 이들이 낯설고,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나를 감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