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Exhibition Interview


봄과 가을, 서촌에서 써 내려간 이야기


민용준 기자 & 이주연 대표

작가 소개
이주연 대표, 요리하는 미식 기자 이주연. 결혼하며 서촌에 정착했고, 현재는 ‘구니니’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고양이와 옥인동 옥인연립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봄에는 <봄은 핑계고>이라는 에세이를 냈습니다.
민용준 작가, 평론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불리며 영화나 대중문화 혹은 여타 분야의 글을 쓰거나 말을 하며 관점과 지식을 팔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13인의 감독 인터뷰집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냈고, 이번 가을에는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이라는 에세이집을 썼습니다.
올해로 결혼 생활도, 서촌 살이도 12년차를 맞이했고, 각자 전문 분야를 살려서 영화와 미식을 결합한 소셜 다이닝 프로젝트 ‘시네밋터블(@cinemeetable)’을 운영 중이며 옥인동 군인아파트에서 조우한 고양이 ‘구니니’와 함께 서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주연 대표
이주연 대표
Q.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소셜 다이닝 ‘시네밋터블’을 N회차 운영 중이신데요. 진행하셨던 시네밋터블 중 가장 인상깊었던 콘텐츠나 회차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주연 : 모든 콘텐츠와 회차가 제 마음속에 반짝이는 별로 남았지만, 그중에서도 <벌새>편이 가장 밝게 떠오르네요. 중학생 은희가 주인공인 <벌새>에서 가족간의 식사 신(scene)은 여러 번 반복되며 중요한 상징성을 띠어요. 버거, 평양냉면, 뇨키 등 시네밋터블로 다양한 요리에 도전했지만, 집밥이야말로 자신 있는 분야이며, 때마침 봄이어서 <벌새> 때 가장 즐겁게 요리했던 것 같아요. 엄마가 보내주는 봄나물에 맞춰 솥밥을 짓고 반찬을 했죠. 제 식탁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요리하고 있으니 진짜 엄마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민용준 : 집에서 운영했던 모임도 하나하나 즐거웠지만 <헤어질 결심>으로 서촌 참바에서 진행한 협업이 특별하게 느껴져요. 집에서는 4인가량의 소수 인원만 참석할 수 있던 것과 달리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고, 바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시네밋터블을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협업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명 새로운 발견이었죠.


Q.
서촌에 거주하시면서 흥미로웠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주연 : 2017년에 이사 왔을 때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그리 많이 유입되지 않았어요. 산책길에 잠시 들른 갤러리에서 우연히 처음으로 인사 나눈 서촌 주민들의 저녁 스케줄에 따라 함께 어울려 새벽까지 술을 마셨어요. 한 번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어요. 종종 비슷한 일이 일어났죠. 같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낭만적이었어요.


민용준 : 일단 서촌이라는 한 동네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가까워지는 사이가 생기곤 하니 서울 한복판에서 서울 같지 않은 경험인지라 신기했어요. 그래서 종종 집을 나서고 동네를 걷고 오가며 마주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서촌에 살고 있으니 동네를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많아서 마치 동네 구경시키듯 안내해주는 일이 생기는 것도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Q.
서촌에서 책 읽기 좋은 장소 혹은 책과 함께 하는 산책코스가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이주연 : 홍건익가옥 별채. 배화여대를 향하는 오르막에 위치한 홍건익가옥은 오성 이항복 선생의 집터라고 사료돼요. 그도 그럴 것이 그 귀하다는 회화나무와 우물, 빙고(氷庫)를 한데 품고 있어요. 홍건익가옥 후원이 보이는 별채는 일종의 도서관 기능을 해요. 옛날식의 1인용 낮은 탁상과 방석이 창가를 따라 놓여져 있어요. 생각보다 머무는 사람이 없어 조용히 책 읽기 더없이 좋아요.


민용준 : 서촌 지로바. 책을 읽기 위해 집 밖의 어딘가로 나서는 일이 잦지는 않는 편입니다만 지로바에서 하이볼 한 잔을 음미하며 책 읽기는 상당히 즐길만한 일이었어요. 과음이나 폭음을 적당히 자제할 수 있다면 가볍게 하이볼 한 잔을 곁들이며 바에서 읽는 책의 묘미를 즐겨도 좋을 것 같아요.


Q.
결혼 이후부터 지금까지 서촌에 정착해 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부가 서촌이라는 지역을 다르게 보셨을 것 같은데, 이곳으로 이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주연 : 2016년에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당시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최초의 외국인 교수이자 ‘서촌 지킴이’로 화제를 모았어요. 그때 처음 교수님을 따라 서촌을 둘러보고 평생 가져보지 못한 고향을 찾은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낡은 실골목에서 한 번도 제 것인 적 없던 추억이 자꾸 뭉실뭉실 떠올랐어요. 그 기시감이 어쩐지 좋아 남편을 설득해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민용준 : 아마 아내가 아니라면 서촌에 올 일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결혼 전에 신혼집의 터로 다른 동네를 보다가 아내의 권유로 서촌에 오게 됐고, 인왕산을 마주하는 순간 이 동네에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 뒤로도 계속 이 동네에서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서촌에서 많은 추억을 갖게 됐네요.


Q.
서촌은 민용준 기자님과 이주연 대표님께 어떤 영감을 주고 있나요?

이주연 : 주로 거실 소파에 앉아 놀고 먹고 일해요. 노트북이나 TV를 향하던 시절을 30도만 틀면 통창을 통해 인왕산 범바위를 볼 수 있어요. 바위니까 변화가 없을 것 같지만, 그곳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바위를 둘러싼 나무들의 생장에 하루도 같아 보이지 않아요. 그 미묘한 차이를 통해 고여 있던 생각의 물꼬가 트이고 물줄기가 넓어져요. 인왕산은 바위산임에도 푸근한 인상과 소소한 재미를 안겨요. 그래서 조선시대부터 사람들이 인왕산 무릎까지 파고들어 집을 지은 거겠죠. 서촌이 안긴 자연을 통해 평온함을 느끼면서도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흘러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민용준 : 서촌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서울 도심의 특징을 갖고 있는 동시에 서울 같지 않은 매력이 공존하는 지역 같아요. 주말이나 휴일에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번화가이지만 막상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조용하고 자연과 맞닿은 느낌이라 여러모로 안온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고 삶의 평정을 유지해 보려는 노력을 거듭 기울이고 싶게 권하는 것만 같아요.


Q.
부부가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이라는 키워드로 함께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주연 : 2023년 연초에 ‘북스톤’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이듬해 ‘사계절 에세이 시리즈’ 출간을 기획하고 있다며, 한 권을 써줄 것을 제안받았어요. 버스커 버스커의 대표곡 <벚꽃 엔딩>처럼 특정 계절을 떠올렸을 때 연상될 만한 책을 만들고 싶어했어요. 제안을 받자마자 ‘봄을 쓰겠다’고 했어요. 저처럼 지체 없이 계절을 고른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봄에 태어나기도 했고, 지금 저를 지탱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봄에 내린 결정들로 인해 뿌리내리고 단단해졌어요.


민용준 : 아내가 <봄은 핑계고>를 쓴 인연으로 출판사를 통해 이번 여름에 제안받았고, 결국 여름 내내 가을에 관한 책을 쓰게 됐어요. 사실 한 권짜리 책을 계절에 대한 특별한 단상으로 채울 요량은 없었던 것 같은데 ‘가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을을 닮은 이야기’를 마음껏 떨어뜨려보고 싶다는 생각은 충분했어요. 그 결과 지난 여름 동안 떨어뜨린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고인 셈이죠.

Q.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은 책 제목부터 목차까지 가을이 확 느껴지는 것에 반해 기자님께서는 가을을 위한 책이 아니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가을’과 ‘떨어질 말’은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나요?

민용준 : 일단 표지에 쓴 사진부터 일반적으로 손쉽게 떠올리는 가을의 이미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형적인 가을의 무엇을 위한 책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다만 읽고 나면 가을처럼 무르익은 마음이 깃들만한 이야기들을 잔뜩 담아 떨어뜨려 보고 싶었죠. 그래서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마음껏 떨어뜨렸어요. 그럼으로써 그것이 알 수 없을 누군가에게도 떠올리고 떨어뜨려보고 싶은 이야기를 찾게 만드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 정도는 있었어요. 결국 낙하의 이미지가 쇠퇴하고 소멸하는 결말부가 아니라 전력을 다해 추진하는 시작점처럼 다가가길 바랐다고 할까요?


Q.
‘결국 행복도, 불행도 가끔씩 오는 일이다. 중요한 건 다행이다.’에 담긴 의미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처럼 다가왔을 것 같은데요. ‘행복’을 목표로 삼거나 ‘불행’을 피하는 것이 아닌 기자님이 마주하는 ‘다행’의 나날은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나요?

민용준 : 일단 저도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불행을 피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만한 도량도 없고, 능력도 없고요. 다만 제 입장에서는 늘 무언가를 써서 남기고, 그렇게 기록된 결과를 바탕으로 제 자신과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제가 맞이할 수 있는 다행이라는 게 있다면 계속 쓰고 마주하고 그렇게 제가 원하는 저로서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혹은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지나치게 무리하거나 과도하게 애쓰진 않고 싶어요. 오는 행복이 있다면 즐기고, 오는 불행이 있다면 견디고, 그렇게 삶이 유지되고 만회하고 만끽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죠.



Q.
<봄은 핑계고>는 봄을 주제로 서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봄과 함께한 경험이 대표님의 삶의 어떤 방향성과 시너지를 안겨주나요?

이주연 :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신혼집으로 서촌에 있는 빌라를 선택했을 때 부모님이 아파트가 아닌 형태의 집에서 사는 것을 걱정할 정도로 아파트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어요. 서촌에서 빌라 1층과 연립 3층에 살며 비로소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껴요. 서촌은 제게 처음으로 중력을 즐기는 삶, 땅의 기운이 주는 평온함이 무엇인지 알려줬어요. 지금은 나아가 이 땅에 중첩된 터의 무늬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만큼 서촌은 멋진 장소이니까요.


Q.
이주연 대표님께서는 다이닝 콘텐츠로 커뮤니티 활동과 책도 쓰셨는데, 이를 통해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싶으신지 그리고 도전하고 싶은 또다른 콘텐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주연 : 미식 기자라고 다 요리를 할 줄 아는 건 아니에요. 저 또한 오랜 시간 ‘요알못’으로 살았어요. 그렇다고 요리를 시작했을 때 대단한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2016년,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났더니 하루 두 끼를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야말로 ‘생존 요리’였어요. 뭐든 하면 늘잖아요. 놀랍게도 요리 실력이 나날이 늘며 시네밋터블 같은 소셜 다이닝도 언감생심 생념할 수 있게 됐죠. 예전에는 텍스트로만 미식을 표현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직접 요리하고 세팅하고 촬영해 이미지까지 만들어내요. 덕분에 본업에서도 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됐죠. 앞으로도 글과 이미지 그리고 요리를 통해 미식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