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Brand Interview


서촌의 골목에서 피어난
추억의 맛, 영광통닭


염은진 대표님

필운대로 55-1
영광통닭

서촌의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면 옛 정취가 묻어나는 작은 가게들이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4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변함없이 치킨을 튀겨온 영광통닭도 그중 하나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맛과 그 안에 담긴 철학을 지켜가는 이곳에는, 그저 치킨을 파는 가게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가족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정성, 이웃과의 소소한 교류, 그리고 서촌이라는 지역이 가진 따뜻한 매력이 녹아 있는 공간. 이 이야기를 들으러 찾은 오늘의 인터뷰에서, 영광통닭 염은진 님과 어머니 박선녀 님이 전해주는 그리운 시간을 느껴보자.

염은진 대표님
염은진 대표님
Q.
안녕하세요, 영광통닭 이야기를 직접 들으러 서촌까지 왔습니다. 벌써 40년이 넘는 세월을 여기서 보내셨다고 들었어요. 처음 이곳에서 시작하시던 시절, 서촌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염은진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희가 서촌에서 치킨집을 시작한 건 1984년이에요. 그 전에는 부모님께서 리어카로 그릇 장사도 하시고 연탄 배달도 하셨어요. 부모님 지인 분이 처음 치킨집을 열었는데, 장사가 잘 안 되어서 저희 부모님께서 가게를 인수하셨죠. 그때 치킨집 이름이 영광통닭이었는데, 간판을 바꿀 여력도 없어서 그대로 두고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영광통닭이 됐고, 그 이름이 우리 가게가 되었죠.


Q.
그렇게 시작한 영광통닭이 40년을 이어온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오랜 시간 동안 가게를 지탱해 준 특별한 원칙이나 철학이 있으신가요?

염은진 : 저희 엄마가 철저하게 수제 방식을 고수하세요. 닭을 튀기는 것도 그렇고, 양념까지 직접 손으로 만드시는 걸 고집하세요. 그 과정이 참 힘들어요. 사과랑 양파를 끓여서 물 한 방울 없이 순수한 수제 양념을 만드는 건데, 진짜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작업이죠. 그런데도 엄마는 이걸 포기하지 않으세요. “이게 영광통닭의 맛을 지켜주는 비결”이라고 믿으시거든요. 저는 그게 우리 가게의 뿌리라고 생각해요. 이 뿌리가 흔들리지 않아야 영광통닭도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요.


Q.
듣기만 해도 어머님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지네요. 지금은 은진 님도 함께 운영을 도와주고 계시잖아요. 처음 부모님께서 가게를 시작하셨을 때와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들이 달라졌나요?

염은진 : 맞아요, 예전에는 아빠가 오토바이로 배달을 다니시고, 엄마가 가게에서 닭을 튀기셨어요. 닭을 생으로도 팔고, 주문 들어오면 무조건 배달 나가고 했죠. 요즘은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배달 대신 포장만 하고 있어요. 네이버 같은 데 정보를 올리고, 영수증 리뷰도 신경 쓰고요. 요즘 젊은 손님들이 서촌에 많이 오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부분들을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포장만 되는 치킨집이라 처음엔 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오히려 그 점을 특별하게 여겨 주시는 것 같아요.


Q.
손님들이 계속 찾아오시는 이유가 느껴져요. 영광통닭에 얽힌 손님들의 특별한 이야기도 많으실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손님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염은진 : 최근에 기억나는 손님이 있어요. 작년에 송파구에서 사는 분이 치킨을 드시러 서촌에 두세 번 오셨다가, 결국 이 동네로 이사 오셨어요. 자녀분이랑 같이 오셨는데, 서촌이 아이 키우기 좋을 것 같다면서 집을 옮기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영광통닭을 계기로 서촌의 매력을 알아주신 게 저희도 참 기뻤어요. 그 밖에도 학창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오셨던 분들이 이제는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 엄마가 워낙 젊게 사셔서 “아직도 그 사장님 맞으세요?” 하고 놀라시는 손님도 많고요. (웃음)


Q.
정말 서촌과 영광통닭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 것 같네요. 어머님과 은진 님이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일과 쉼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 같은데요. 두 분만의 일상의 여유나 쉼을 찾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염은진 : 솔직히 가족끼리 하다 보니 쉬는 날이 없어요. 엄마는 평생 쉬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른다고 하세요. 엄마의 유일한 여유는 아침에 모카골드 커피를 한 잔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점심 전에 잠깐 가게로 지인들이 찾아와 차 한잔 하며 수다 떠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작은 쉼이죠. 저는 하루 마무리로 엄마랑 저녁 먹으며 반주 한 잔 하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저희는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게 없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는 기분이에요. 그런 소소한 일상이 저희에게는 여유인 것 같아요.


Q.
작은 일상 속에 서로 의지하고 즐기는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져요. 마지막으로, 영광통닭이 앞으로 서촌에서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염은진 : 사실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도 물어봤어요. 엄마는 “그 맛이 유지되지 않으면 가게를 접는 게 낫다”고 하세요. 나중에 저나 다른 가족들이 이어가더라도 영광통닭의 원래 맛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거든요. 단골 손님들께서 “아직도 그 맛이야”라고 말씀해 주시는 게 엄마한테는 정말 큰 보람이에요. 저는 서촌 하면 영광통닭이 제일 먼저 떠오르면 좋겠어요. 청와대보다 영광통닭이 먼저 떠오르고, 사람들이 이곳에서 오래된 시간을 함께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요. 언제든 찾아와서 한 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곳, 만만하지만 맛있는 가게로요. 제 친구들도 그만큼 영광통닭을 좋아해요. 저희 양념을 다 알고 있으니까 끝까지 꼭 유지하라고 당부할 정도로요.


영광통닭은 단순히 치킨을 파는 가게가 아니다. 40년의 시간을 품고 그 속에서 피어난 정성과 서촌이란 지역의 고유한 정서가 어우러진 곳이다. 그저 스쳐 가는 동네 가게가 아니라, 오랜 기억 속에서 추억의 장소로 남을 영광통닭. 그 맛과 철학을 지키려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는 서촌의 역사와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

인터뷰 제작 | 로컬루트 @localroot.co
(글 : 김민하 / 사진 : 마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