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Brand Interview


정성의 씨앗이
자라온 시간,
통인시장 손맛김밥


정서윤 대표님

자하문로15길 18
손맛김밥

“다 먹고 남은 꼭지를 저렇게 던져두어도, 내년이면 토마토가 열리더라. 신기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이 대사는 정성스러운 사랑이 얼마나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는 듯 합니다. 무심코 사랑을 흘려보내더라도 마치 토마토 씨앗이 땅을 뚫고 싹을 틔우듯 언젠가 그 사랑이 다시 피어날 거라고요. 통인시장 손맛김밥의 정서윤 사장님이 이어온 김밥 역시 그 사랑을 닮아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배운 정성과 사랑은 서윤 님의 손끝에서 그대로 피어나고 있죠. 그 따뜻함은 손님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또 다른 사랑을 싹틔우게 할 거예요.

정서윤 대표님
정서윤 대표님
Q.
어머님과 함께 일하시며 들었던 조언 중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어떤 가르침이 지금의 김밥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고 있나요?

정서윤 : 그렇죠. 젊을 때부터 엄마를 도와서 하루 종일 김밥을 말았어요. 그때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네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은 남에게도 주지 마라"는 말씀이에요. 김밥을 싸면서도 늘 마음속으로 '이걸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싸라고 하셨죠. 먹는 음식을 대할 때는 정성을 담아야 한다고, 한 줄을 싸더라도 허투루 하지 말라고요. 한 번은 재료 손질할 때 편하게 채칼을 사용했더니 엄마한테 크게 혼이 났었어요. "사람의 손맛이 있듯이 칼맛도 있다"고요. 신기하게도 엄마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금방 알아차리더라고요. 기계를 사용하면 맛이 다르다는 걸 손님들이 바로 느끼시더라고요. 결국 그 기계를 팔아버렸어요. 그때 깨달았죠. 엄마 말씀이 다 맞다는 걸요. 지금도 엄마가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리면서 장사를 해요. 손님에게 허투루 대하면 안 된다는 엄마의 가르침이 지금도 제 일의 기준이죠. 그리고 손님이 늘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음식을 만들어요. 제 딸이나 손녀에게 줄 김밥이라고 생각하면서요.


Q.
통인시장 상인 분들, 오랜 단골 손님들은 돌아가신 어머님을 지금도 많이 기억하고 계시다고 해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정서윤 : 저희 엄마는 이 동네에서도 정말 정성스럽게 음식을 하시는 분으로 유명하셨어요. 정말 친절하고 성실한 분이셨죠. 엄마와 함께 김밥을 만들었던 15년 동안 채칼도 쓰지 않고, 당근과 우엉을 손으로 다 채썰었어요. 제 손가락이 다 상할 만큼 우엉 껍질도 다 벗겨서 20~30kg씩 준비했죠. 김도 후라이팬으로 하나하나 구워서 사용했고요. 엄마는 왜 그렇게 힘들게 하셨는지, 돌아보면 가슴이 아파요. 엄마의 단골 손님들이 지금도 오셔서 그 김밥을 먹고 싶다고 하세요. 어떤 손님은 용산에서 일부러 찾아와서 먹고 가기도 해요. 다른 손님은 파주에서 서울까지 와서 김밥을 사가신 적도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김밥집이에요"라고 할 때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참 뿌듯해요. 그런 순간에 김밥을 싸는 보람을 느끼죠.


Q.
지금 따님이 가게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 사장님의 젊었을 때 모습이 떠오르기도 할 것 같아요. 따님과 함께 일하는 순간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서윤 : 네, 딱 그 나이예요. 저도 30대 초반에 이 가게를 시작했거든요. 딸이 가게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 시절의 제 모습이 떠오르곤 해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김밥 장사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아팠지만 당시에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그 말을 했는지 조금씩 알게 됐죠. 그래서 요즘 딸이 가끔 가게에 와서 일할 때마다 엄마가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을지 공감하게 돼요.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딸에게만큼은 이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이었겠죠. 요즘 가게 일이 힘들어서 가끔 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솔직히 딸이 가게에 오는 게 싫어요. 딸에게 이런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빨리 집에 가라고 해요. 엄마가 일요일마다 저를 부르던 그 마음이 지금의 제 마음과 닮아 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돼요.


정서윤 대표님
정서윤 대표님
Q.
그 시절 두 아이를 키우며 가게를 운영하시던 때가 참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시의 마음가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정서윤 : 맞아요. 그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애들 둘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가게로 내려가고, 엄마가 "왜 아직 안 일어났냐"고 창문을 두드릴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지금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처럼 열심히 일하고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 시간 엄마가 해주시던 말씀들이 아직도 저를 이끌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 제작 | 로컬루트 @localroot.co
(글 : 박현아 / 사진 : 마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