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Brand Interview


변함없는 주민들의
건강 쉼터,
종로 프라자 약국


정영기 약사님

자하문로 63
종로 프라자 약국

몸이 아프면 어쩐지 마음마저 무거워지곤 합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에 가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럴 때 한 동네에서 오래도록 인사하고 지내온 약사님이 약과 함께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면, 마음이, 그리고 아픔이 조금은 누그러드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25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성실히 아픈 주민을 살피신 정영기 약사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려와 쉼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해요. 우리는 모두 열심히 달려 많은 것을 이루어 냈지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쉼이 중요하다면서요. 차곡차곡 쌓아온 성실한 삶 속에서 찾은 배려와 쉼은 어떤 것인지 여쭤보았습니다.

정영기 약사님
정영기 약사님
Q.
25년 동안 서촌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진, 종로프라자약국. 이 곳에서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정영기 : 서울로 올라와 직업 약사로 일하다 동료의 권유로 개업하게 되었어요. 종로 쪽은 관철동 쪽을 제외하고는 잘 몰랐지만, 이 동네를 와보니 아늑한 느낌을 받아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 위치엔 보건소와 이비인후과, 큰 은행이 2개가 있어 약국을 열기에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엔 모험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25년 가까이 운영하며 동네에 굉장히 정이 많이 들었어요. 이제는 약사로서, 그리고 경제적인 목적으로 이곳에 있다기보다는, 동네 주민으로서 낮 동안에 거주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지내고 있어요.


Q.
긴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약국을 운영하시면서 서촌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 혹은 약사님만의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영기 : 제가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주민과의 교감이었어요.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을 보면 10년, 20년 사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4~50년 사신 분들도 계세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라 아이를 낳은 분들도 많고요. 서촌을 두고 “서울 사대문 안에 있지만 시골보다 더 시골 같다.”라고 하는 말들을 들어 보셨을 거예요. 그 때는 서촌이 아니라 청운효자동으로 불렸지만요. 제가 동네에서 느끼는 아늑함, 그리고 주민과 깊은 교감이 서촌에 오래도록 뿌리내릴 수 있게 한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해요.


Q.
오랜 시간 약사로 일 하시면서 수많은 이웃과 손님을 만나셨겠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잊을 수 없는 손님이 계실 것 같아요. 떠오르시는 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정영기 : 많은 분이 기억나는데 특별히 더 기억나는 분이 계세요. 오래전, 의약분업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노신사분이 치과 처방전을 가지고 오셨어요. 치과에서는 잘 처방하지 않는 약이 처방전에 있어서, 더욱 더 신경 써서 조제하여 드렸지요. 얼마 안 있어 노신사분께서 전화 하셨는데, “약을 제대로 준 것이 맞느냐? 치과에서 약을 잘 못 받았다고 한다.” 라고 하시는거에요. 그래서 분명히 맞게 드렸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서로 언성이 조금 높아졌었어요. 그렇게 논쟁이 있고 난 다음 날, 치과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제가 상황을 설명하고 처방전대로 조제한 것이 맞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던 치과 의사 선생님이 자신이 잘 못 처방한 것 같다며, 손님에게 말씀드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이 이것으로 일단락이 되고, 그 손님은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요.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그냥 그 가겐 안 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다음 날, 그 노신사분께서 저희 약국에 오셔서 정식으로 사과하시더라고요. 이날의 일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이런 인품을 가지신 분들이 우리 동네에는 많으신 것 같아,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Q.
종로 프라자 약국은 긴 세월 서촌의 일상을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함께해 온 공간이죠. 이곳에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얻은 삶의 지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영기 : 약국을 운영하며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삶의 지혜는 타인에 대한 배려에요. 이 동네에는 서울맹학교와 국립서울농학교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정도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동네에 장애인 재활치료를 위한 푸르메 센터가 있는데, 이 시설을 건립할 때도 주민자치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였죠. 전, 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Q.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약국의 문이 항상 열려 있더라고요. 20년 넘게 성실함을 유지할 수 있음은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일상의 루틴일거라 생각해봤어요. 약국을 운영하시면서 내면을 지킬 수 있었던 일상의 루틴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정영기 : 제가 저희 약국에 실습하러 오는 후배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약사가 건강해야 주민들이 건강하다.”에요. 그래서 실습 시간을 쪼개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도 해요. 약사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더 잘 주민들의 건강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저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취미생활도 즐기곤 해요. 


Q.
워라밸, 일과 쉼의 밸런스라고 하죠. 그렇다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는 휴식을 취할 때는 주로 어떤 것들로 에너지를 채우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정영기 : 너무 다 바쁘게 사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참 부지런해요. 그것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발전을 많이 했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쉼의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까 또 틈틈이 쉬어 가면서 다음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저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취미생활로는 동네에서 수요일에는 하모니카를, 토요일에는 풍물을 해요. 11월엔 필운대로에서 열리는 동네 축제에서 풍물 공연을 할 예정이고요. 같이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하며 즐겁게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영기 약사님
정영기 약사님
Q.
2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서촌은 지금과 많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그 변화를 바라보면서 그때와 비교해본다면, 가장 많이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영기항공사진을 보며 비교해 보면 25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진 않을 거로 생각해요. 큰 건물이 들어서거나 하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촌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안의 가게들은 많이 변화가 있었어요. 예전엔 차 한 잔 마실 가게가 없었는데, 지금은 카페가 무척 많죠.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사는 분들은 여전해요. 그 때 제가 뵈었던 60대 분이 지금은 80대가 되셨지만 그 때랑 같아요. 그분들이 보시는 저도 변함이 없겠죠. 서촌에서는 여전히 이웃 간에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물어요. 제가 퇴근하며 경복궁역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적어도 10명의 이웃과 인사를 주고받지요.


Q.
서촌의 시간처럼 종로 프라자 약국의 시간도 함께 흘러왔죠. 종로 프라자 약국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많이 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정영기 : 약국 시장에 큰 변화가 몇 있었어요. 그 중 의약 분업은 약국 업계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저희 약국 근처에 있는 보건소에서 나오는 처방이 줄고, 근처의 병원도 많이 줄었어요. 그만큼 저희가 주민들과 더욱 소통하고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죠. 주민분들이 그런 부분에서는 저희 약국을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동네 사는 정, 그리고 주민 간의 끈끈함. 이런 것들은 변치 않았죠.


Q.
때로는 사랑방이 되기도, 주민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공간이자 이웃일 것 같다는 생각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생각이 드네요. 약국을 운영하고,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시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실 때가 언제인가요?

정영기 : 약사회와 서울시에서 함께 했던 세이프 약국이라는 것이 기억에 남아요. 의료급여 환자, 특히 독거노인분들의 복약 지도를 심도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가정방문을 해서 그분들과 대화하며 어떤 약을 들고 계신지,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고 계시는지 파악하고 건강 및 복약 지도를 했었어요. 또 보건소와 주민센터 연계도 알아보았고요. 약사로서 지역사회에 공헌한 활동들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Q.
앞으로 ‘종로 프라자 약국’이 서촌 이웃들에게 어떠한 공간, 약국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는지 바람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정영기 : 제가 25년 가까이 쭉 해왔던 것처럼, 우리 주민들과 더 밀착되어 주민들의 아픈 몸과 마음에 공감하며 치료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약사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 제작 | 로컬루트 @localroot.co
(글 : 김혜란 / 사진 : 마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