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Brand Interview


서촌 이야기를
담은 그릇,
청과 오거리 마트


민경석 대표님

자하문로9길 17
청과 오거리 마트

“밥상에 밥 그릇, 국 그릇, 간장종지처럼 모두 제 역할이 있잖아요. 제 그릇은 이 자리에서 제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욕심 부리지 않고 그릇이 넘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내면서 이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민경석 사장님은 가족들과 함께 40년 가까이 청과 오거리 마트를 한 자리에서 운영하며 서촌의 변화를 지켜봐 왔어요. 자신의 그릇이 넘치지 않도록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죠. 사장님이 말한 그릇에 담긴 물 위로 서촌의 모습이 비치듯, 마트 역시 서촌의 변화를 담아내는 거울 같은 공간이 되었어요. 변화 속에서도 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장님의 삶이 보여주는 듯 합니다. 사장님의 그릇에 담긴 서촌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세요.

민경석 대표님
민경석 대표님
Q.
청과 오거리 마트의 시작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민경석 : 이 마트는 1985년에 매형과 누나가 16평 규모로 시작한 곳이에요.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고 틈틈이 마트 일을 도왔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90년 말까지 일을 도우면서 경험을 쌓았고요. 매형과 누나가 연세도 있으시고 건강 문제로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어 하셔서 2023년 1월부터는 제가 가게를 온전히 맡게 되었어요. 1985년에 서촌에 처음 왔을 때는 ‘내가 이 동네에서 살 수 있을까?’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감사하게도 여기 정착하게 되었네요. 처음 제가 모든 것을 책임졌을 때는 부담이 컸지만 오랫동안 함께했던 경험 덕분에 점점 익숙해지더라고요.


Q.
1985년 서촌에 처음 오셨을 때의 모습이 궁금해요.

민경석 : 처음 서촌에 왔을 때는 정말 시골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정말 가족처럼 연결된 느낌을 받았어요. 동네 인심도 좋고, 교통도 편리한 곳이었어요. 한 번 정착하면 쉽게 떠날 수 없는 매력이 있죠. 다만 동네가 작다 보니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단점도 있었어요. (웃음) 그래도 이웃끼리 서로를 더 챙기고 좋은 소식은 함께 축하하며, 힘든 일에는 위로를 주고받는 따뜻한 동네라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Q.
마트의 변화는 서촌의 변화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것 같은데요. 어떤 점에서 그런 것을 느끼시나요?

민경석 : 정말 그래요. 예전에는 가게 한편에 분유와 기저귀를 종류별로 쌓아두곤 했는데, 지금은 노인용 제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죠. 시대가 변하면서 가게의 모습도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명절이 되면 과일이나 스팸, 생활용품 선물 세트를 가득 쌓아뒀는데, 요즘은 온라인 쇼핑몰의 영향으로 그런 풍경도 많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가끔 외국인 관광객들이 스팸 세트를 보고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는 걸 보면 재미있기도 해요. 또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쌀을 구입하는 사람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죠. 이렇게 가게의 변화 속에서 동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실감해요.


Q.
오랜 시간 오거리 마트에서 일하시면서 손님들과 친구, 이웃이 되어 깊은 인연을 이어오셨을텐데요.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으신가요?

민경석 : 오래된 단골 손님들이 참 많아요. 예전에 분유와 기저귀를 가득 쌓아놓고 팔던 그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새벽 1시에 혜화동에서 한 어머니가 분유가 떨어져 급히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어른들은 물건이 없어도 견딜 수 있지만, 아이들 밥은 다르잖아요. 한밤중에도 아이들은 꼭 챙겨야죠. 그 어머니가 진땀을 빼며 고맙다고 할 때 느꼈던 보람은 지금도 생생해요. 또 한겨울에 수성동 계곡에 근처에 사는 분이 있었는데, 혼자 갓난아이를 돌보고 있어서 나올 수 없었대요. 그래서 제가 직접 분유를 배달해주었죠. 감사 인사를 들었을 때의 그 따뜻한 마음이 아직도 기억나요.


민경석 대표님
민경석 대표님
Q.
단순히 하나의 물건을 판매하는 것 이상으로, 필요한 순간에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었겠네요.

민경석 : 맞아요. 예전에는 그런 일이 더 많았죠. 그래서 손님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미리 메모해 두고, 가능한 한 준비해둬요. 손님들이 자주 찾는 물건들은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죠. 예를 들어 담배를 사러 오시는 분들이 있으면 그분들의 표정만 봐도 미리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어요. 오랜 시간을 반복해서 일하다 보니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손님들로부터 고마운 인사를 받을 때가 많아요.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말씀해주실 때 정말 감사하죠.


Q.
서촌에서는 적어도 20년은 가게를 운영해야 이웃들에게 노포라고 불리는 분위기가 있죠. 청과 오거리 마트는 39년 동안 운영해 왔으니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별한 모습들이 있을 것 같아요.

민경석 : 그렇죠. 서촌에서 40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기저귀를 차고 다니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저를 찾아와요. 예전에 초등학생이던 친구들이 결혼하고 오랜만에 찾아오면 서로 신기해 하면서 정말 반갑게 인사해요. 그 친구들이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할 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저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계속 가게를 운영했을 뿐인데, 그게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는 걸 느끼면 참 감사하죠.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저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도 서촌에서 어떤 사람, 어떤 공간으로 남고 싶으신가요?

민경석 : 시대가 변하더라도 제 마음은 그대로 두고 싶어요. 세상이 바뀌는 대로 열심히 따라가겠지만, 내 자신을 변화시키면서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굳이 제 자신을 바꿀 필요 없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이곳에서 동네 사랑방처럼 사람들에게 편안한 공간으로 남고 싶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서촌에서 이 가게를 계속 운영하면서 소소한 기쁨을 누리면서요. 변화 속에서도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키면서 이웃들에게 따뜻한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Q.
요즘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성공을 위해 변화를 추구하곤 하죠.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현재 모습 그대로 남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공감이 가요. 그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민경석 : 사실 저도 젊었을 때는 도전하고 싶었고 더 큰 꿈을 꾸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많이 느꼈죠. 좌절도 하고, 벽에 부딪히는 일도 많았어요. 결국 순리대로 사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목표를 막연히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욕심을 너무 부리면 오히려 좋지 않죠.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려고 해요. 사람마다 각자의 그릇이 있으니까요. 밥상에 밥 그릇, 국 그릇, 간장종지처럼 모두 제 역할이 있잖아요. 제 그릇은 이 자리에서 제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욕심 부리지 않고 그릇이 넘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내면서 이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인터뷰 제작 | 로컬루트 @localroot.co
(글 : 박현아 / 사진 : 마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