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Brand Interview


24년의 뚝심과 진심으로
지켜온 서촌의 한 자락,
안주마을


고영권 대표님

한 동네의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을지로, 압구정 그리고 서촌. 서울의 주요 지역들은 각기 고유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인왕산의 늠름한 품에 안겨있는 작은 서촌은 기백이 넘치면서도 서정적인 인상을 자아내죠. 하나의 형상으로 각인하기 어려운 동네의 정서는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동네를 거닐며 마주한 눈빛, 들려오는 말소리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우리 마음에 스며드는 것일 테니까요. 이처럼 안주마을의 대표 고영권 님은 24년 동안 서촌 골목에서 건넨 인사와 눈빛으로 서촌의 정서를 만들어 갑니다. 또 사람을 통해 서촌을 바라보고, 그 서촌에서 다시금 사람을 바라보죠. 뚝심과 사람됨으로 서촌의 한 귀퉁이를 채워가는 영권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고영권 대표님
고영권 대표님
Q.
2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그동안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조언 중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나요?

고영권 : 부모님과 함께 장사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조언이 항상 큰 도움이 됐어요. 아버지께서는 "뚝심 있게 나아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20~30대 시절에는 패기와 열정이 넘쳐서 다른 사업도 해보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자본에 휘말리지 말고 묵직하게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돈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벌어야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요. 그때는 그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어요. 조급해지지 말라는 뜻이었죠. 부모님의 조언 덕분에 지금까지 한 길을 꾸준히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24년 동안 안주 마을을 운영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고영권 : 제가 흔들리지 않고 먼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골 손님들의 힘인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하는 제 모습을 기억해 주고 예쁘게 봐주시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 보니 손님들이 친구가 되어가기도 하고요. 이분들이 저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이 사람에게 잘하면 언젠가 그 마음이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가게의 정다운 분위기도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를 기억해 주는 손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거겠죠. 이 생각이 깊게 자리 잡을수록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환대하는 마음으로 맞이하게 돼요.


Q.
안주마을 근처에 보리굴비 전문점 
‘서촌아라’를 새로 시작하셨다고요. 새로운 가게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영권 : 저는 서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아왔어요. 최근 서촌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더욱 많아졌는데요. 한국에서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잖아요. 저도 해외에 나가면 그 지역의 특산품이나 먹거리를 사 로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런데 문득 우리 서촌에는 왜 그런 기념품이나 먹거리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작은 용기를 내어 ‘서촌아라’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보리굴비는 아직 외국인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언젠가는 이 지역을 찾는 분들이 서촌의 기념품으로 사갈 수 있기를 바라요. 아버지께서 늘 해주신 말씀처럼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이 사업을 천천히 성장시키고 싶어요. 시기가 맞으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겠죠.


Q.
매일 바쁘게 가게를 운영하시는데 
그 속에서 어떻게 쉼을 찾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고영권 : 제게 가장 큰 쉼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에요. 서촌의 작은 골목을 가족들과 손잡고 걸을 때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껴요. 마음이 조급해지면 바쁜 일상 속에도 늘 존재하는 따뜻함을 알아차리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종종 산책을 하거나 산에 올라가서 숨을 고르곤 해요. 때로는 가게 앞에 멈춰 서서 가게를 바라보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면 함께 일하는 직원분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고 자연스레 힘이 생겨요. 그 순간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 것이 저에겐 소중한 휴식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Q.
직원분들과 함께 안주마을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고영권 : 리더로서 무조건적인 독려는 오히려 이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겠죠. 별 말 없이 제가 앞서 움직이다 보면 직원분들도 그 모습을 보고 더 열심히 해주시는 듯 해요. 또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기고요. 누군가 바쁘게 움직일 때 다른 직원들이 조용히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 이게 바로 안주마을의 분위기라고 느껴요. 특히 우리 가게 직원분들은 대부분 서촌에서 오랫동안 거주하신 분들이 많아요.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서로에게 신뢰와 배려가 쌓여 자연스럽게 돕고 이끌어주게 되죠. 그분들이 있어 함께하는 힘으로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거예요.


Q.
서촌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만큼 이 동네에 대한 사장님의 애정이 남다를 것 같아요. 사장님에게 서촌은 어떤 의미인가요?

고영권 : 서촌은 저에게 단순한 동네가 아니라 인연과 교류의 공간이에요. 이곳에선 동네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아요. 동네 사람들과 오가는 인사가 쌓여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게 서촌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곳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기에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될 정도로 서촌에 대한 애정이 깊어요. 물론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따뜻함이 있거든요. 특히 낡은 한옥들이 주는 감성,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들이요. 서촌을 찾는 분들이 이곳에서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쉽게 인사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 마을의 정서가 서촌만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고영권 대표님
고영권 대표님
Q.
서촌은 다른 서울의 지역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 듯 해요. 이곳만의 특별한 정서나 분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고영권 : 서촌은 빠르게 변하지 않는 느긋한 동네예요.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고 상권은 바뀌지만 이곳의 기본적인 분위기와 정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요즘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서촌은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동네 사람들 간의 교감이 중요한 곳이죠. 서촌에서는 이웃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서촌에서 봐왔던 이곳의 느리고 평온한 생활 방식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교감이 저에게는 삶의 큰 토대와 자양분이 되었어요. 당연하게 보고 자라온 것이 앞으로 제 앞길에도 중요한 가치가 되는 거겠죠. 언젠가 제 아이에게도 좋은 이웃으로서의 가치를 꼭 전해주고 싶어요.


Q.
안주마을이 손님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고영권 : 사실 저희 가게가 웨이팅이 길어지면서 손님들께 불편을 드리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려요. 죄송한 마음이 크죠. 그럼에도 안주마을을 찾는 손님들이 느끼셨으면 하는 것은 화려하거나 세련된 무언가가 아니라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정직한 맛을 꾸준히 고집해온 저희의 진심이었으면 해요. 서촌은 특별한 것보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거든요. 저희 가게도 그런 서촌의 정서를 담아서 손님들이 편안하게 머물다 가실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기본은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함이고, 음식의 기본은 좋은 재료와 맛이라는 가치를 오래도록 전하고 싶어요.

인터뷰 제작 | 로컬루트 @localroot.co
(글 : 박현아 / 사진 : 마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