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People Interview


골목에서 시작되는
‘사람의 동네’


오은선

서촌에서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의 한 장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집이 되는 과정이 된다. 누상동에 집을 짓고 세 식구의 자리를 만든 오은선 님에게 서촌은 처음부터 ‘살기 위해 고른 동네’는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살던 용산을 떠나 층간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 곳곳의 땅을 찾아다니다, 문득 발길을 멈추게 만든 곳이었다. 친구와 맛집을 찾으러 오던 동네, 전시를 보러 오는 동네는 새집을 지을 장소가 되고, 그렇게 시작된 서촌살이는 어느새 6년의 시간을 품게 되었다. 천천히 집을 짓고, 천천히 사람을 알아가며, 천천히 골목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그녀는 서촌을 이루는 본질이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가까이서 확인하고 있었다.

골목에서 만나는 풍경과 이야기들

오은선 님이 서촌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공간은 다름 아닌 ‘골목’이다. 차가 드나들지 않는 좁은 골목을 따라 걸을 때마다 매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누군가는 작은 화단을 가꾸고, 누군가는 장독대를 지키며 오래된 집을 보듬는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계절마다 달라지는 식물들도 그 골목을 시간의 단위로 만든다. 아이가 귀한 동네여서인지 골목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모두 기억해 반겨주고, 일상의 작은 변화를 먼저 알아봐주는 사람들도 그 골목에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골목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서촌의 ‘보석 같은 공간’이자 사람을 마주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장소로 남는다.


이웃과 가게 사이에서 이어지는 마음

오은선 님의 서촌은 이웃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 집 앞 골목에는 토리빵집 사장님이 살고 있고, 가까운 곳에는 서촌와인상점 사장님, 또 다른 골목에는 두오모 북수인국수 사장님이 산다. 골목에서 마주치며 소스를 나눠주고, 가게를 방문하면 빵을 덤으로 건네고, 선물할 와인을 고를 때는 꼭 맞는 한 병을 추천해주는 일들은 이웃의 온도를 그대로 담고 있다. 심지어 집 건너에는 비올리스트 김남중 선생님이 살아 클래식 공연 티켓을 건네주기도 한다. 골목의 할머니들은 여름이면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동네 소문 한 조각도 정겹게 나눈다. 그녀는 이런 연결을 두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보석 같다”고 말한다.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는 동네가 주는 변화

이전 동네에서는 이웃의 얼굴을 모른 채 몇 년을 살기도 했다. 떡을 돌려도 문고리에 걸어둘 뿐이고, 아이를 혼자 보내기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서촌에서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동네 어디를 가도 아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가 보살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아이는 혼자 골목을 다니고, 동네 시장에 들르고, 필요할 때는 빵집 심부름도 간다. 이웃들이 아이의 성장 과정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일상에 대한 든든한 확신이 생긴다. “요즘처럼 무서운 뉴스가 많은 시대에 아이가 혼자 다녀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동네는 흔치 않다”는 말은 그녀가 서촌에 머물게 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사람의 얼굴이 남는 동네

오은선 님은 서촌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시간에 따라 천천히 변해가는 동네’이기를 바란다. 오랫동안 가게를 지켜온 사람들은 계속 이곳에서 장사할 수 있기를, 새로운 가게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도 지켜졌으면 한다. 이곳은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급작스러운 변화를 경계해야 하는 동네다. 그녀는 서촌을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매력이 이어질 동네”라고 말하며, 인위적인 변화가 아니라 서촌의 리듬대로 흘러가는 시간이 유지되길 바란다. 결국 이 동네의 색깔을 만드는 것은 건물이나 상권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은선 님에게 서촌은 풍경보다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동네다.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골목에서 마주한 이웃들은 그녀의 일상을 채우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유명인이든 그렇지 않든,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이 동네의 결을 만들고 있다. 아침에 지나치며 인사하는 이웃이,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빵집 사장님이, 골목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이곳의 풍경을 완성한다. 그래서 그녀가 서촌을 한 단어로 표현할 때 망설임 없이 말한다. “서촌은 사람이다.” 이 동네를 오래 지키는 얼굴들이 앞으로도 서촌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