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People Interview


떠나지 않아도
여행이 되는 마을


이진희

누군가에게 여행은 먼 곳을 향하는 여정이지만, 이진희 님에게 서촌은 11년째 ‘집에서 시작되는 여행’의 무대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집과 회사가 가까워 선택한 공간이었지만, 시간을 겹겹이 쌓아가며 서촌은 어느새 하루의 리듬을 바꾸는 특별한 풍경이 되었다. 출근길의 빛, 골목의 온도, 계절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순간들이 그의 삶 안에서 천천히 의미를 만들어냈다. 떠나지 않아도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는 동네. 이진희 님은 서촌에서 그렇게 ‘작은 여행’을 매일 이어가고 있다.

걸으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여행 지도

서촌에서의 시간은 늘 걸음과 함께였다. 일터와 집을 오가며 지나치는 길, 주말마다 가볍게 나선 산책, 인왕산 끝자락에서 만난 빛의 결까지, 걸으면 보이는 장면들이 그의 일상 속 여행처럼 다가왔다. 같은 길이라도 계절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주고, 바람이 불면 작은 식물의 흔들림까지도 마음에 닿았다. 어디로 향하는지 정하지 않아도 목적지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 그는 서촌에서 걸을 때마다 이 동네가 가진 고유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여행하듯 느끼곤 했다.


익숙함 사이에서 만나는 예상하지 못한 연결

서촌은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관계들이 스며 있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은 카페에서 오고 간 짧은 인사가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고, 단골 가게들이 늘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이름을 모르는 얼굴이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는 순간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마주치는 사람들, 눈인사만으로도 하루의 결이 바뀌는 작은 교감들. 이진희 님은 서촌에서 그 ‘사소하지만 확실한 연결’을 여행 중에 만나는 우연처럼 받아들였다.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드문 공간

서촌으로 이사 오기 전의 그는 늘 빠르게 움직였다. 일의 흐름에 맞추어 달리고, 속도를 늦추면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곤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균형을 만들어줬다. 건물의 높이가 낮고 하늘이 넓게 보이는 구조, 골목의 폭이 주는 여백,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서가 형성한 느긋한 분위기. 이 모든 요소가 이진희 님의 속도를 조금씩 다듬었다. 서촌에서의 11년은 ‘조금 더 내 페이스로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나에게 여행이란, 서촌의 하루를 다시 걷는 일

서촌은 그에게 편안한 여행지와도 같았다. 같은 길을 걸어도 늘 다른 풍경이 있고, 사람과 장소가 만들어내는 작은 장면들이 매일 다른 온도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는 이 공간이 앞으로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천천히, 지금의 속도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오래된 가게들이 제 자리에서 숨을 쉬고, 새로운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가며, 서촌다움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그래야만 이곳에서의 여행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진희 님은 서촌을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매일 조금씩 다른 여행 같은 곳.” 11년 동안 서촌은 그에게 특별한 사건보다 조용한 축적의 힘을 보여준 공간이었다. 떠나지 않아도 새로운 장면을 선물하는 동네, 머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곳. 그에게 서촌은 오늘도 그렇게 ‘천천히 발견되는 여행’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