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chon Brand Week - Brand Interview


머무는 책,
머무는 마음


책책 | 선유정 대표님

서촌 골목을 걷다 보면, 햇살이 벽돌 사이로 스며드는 순간이 있다. 체부교회를 지나 책책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선유정 대표는 그 장면을 보고 “여기라면 오래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소박하고 크지 않은 한옥 안에 책 두 개의 의미를 겹쳐 둔 작은 서점. 하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책’, 다른 하나는 책에 담긴 생각을 실제로 체험하고 실천한다는 뜻의 ‘책’. 이 두 문장을 품은 책책은 오랫동안 출판을 해온 그녀가 서촌에서 다시 시작한 조용한 시도였다. 환경과 기후 문제를 꾸준히 기록해 온 출판사로서, 책을 통해 삶을 바꾸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서촌이 가진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 만나 지금의 책책이 만들어졌다.

책을 읽고, 책을 살아내는 공간

책책이라는 이름은 책을 읽는 행위와 책의 내용을 실제로 체험한다는 의미를 가진 두 개의 ‘책’에서 시작됐다. 유정 대표는 출판과 기자 생활을 오래 해오며 실용·라이프스타일 분야의 책을 만들어왔고, 그 경험은 책책의 큐레이션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옥을 개조한 공간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 한 방은 문학·예술·여행·철학 등 일상에 작은 에너지를 주는 책들로 채워져 있고, 다른 한 방은 ‘기후방’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곳에는 기후·환경·제로웨이스트에 관한 책과 실천 가능한 물건들이 함께 놓여 있다. 7년 동안 발행해온 기후 신문과, 그 내용으로는 담기지 않아 별도로 만든 환경 매거진까지. 책책의 출판 활동은 이 공간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인사와 나눔이 스며든 골목

서촌에서의 1년 동안 유정 대표는 이 동네에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저 걸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골목과 오래 바라보곤 했던 인왕산, 우연히 발견된 한옥 공간이 끌림의 이유였지만, 살다 보니 더 본질적인 이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로 불편을 끼친 날에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고, 지나가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이웃들이 있었으며, 삶은 감자나 직접 키운 상추를 건네는 손길도 있었다. 집 앞 화분과 꽃들은 집주인보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위해 피어 있는 듯 보였다.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작은 온기와 배려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관계들. 그 결이 책책이 찾던 동네의 확신이었다.


마음에 닿는 책, 마음에 머무는 순간

책책의 책장은 큰 서점에서는 쉽게 지나칠 책들로 조용히 채워져 있다. 삶에 작은 앳지를 더해주는 책, 지금의 감정에 맞닿는 문장들을 기준으로 큐레이션한다. 위로가 필요한 날엔 손끝에 오래 남는 한 문장이, 일상의 감도를 높여주는 실용서 한 권이 그렇게 책책의 책장에 자리한다. 서촌으로 옮긴 뒤 자연스러운 변화도 생겼다. 예상보다 훨씬 글로벌한 동네라는 사실을 체감하며 영문 서적의 비중이 늘었고, 각기 다른 나라의 시선으로 서촌을 소개하는 여행형 에세이를 기획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책책에서 사람들이 꼭 발견하길 바라는 것도 거창한 ‘책 한 권’이 아니라, 잠깐 머물다 마음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작은 감정의 변화다. 한옥의 바람, 골목의 빛, 조용한 방의 온도처럼 별것 아닌 순간이지만 은근히 마음에 남는 휴식. 책책이 건네고 싶은 건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선유정 대표가 서촌에서 1년을 보내고 떠올린 단어는 ‘무지개’였다. 큰 길을 중심으로 색이 다른 골목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서로 다른 개성과 삶을 가진 이웃들. 모두 다른 색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는 점에서 서촌은 무지개와 닮아 있었다.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지고, 행운처럼 느껴지는 장면들. 책책은 그 무지개의 한 조각이 되고 싶다. 조용한 한옥 책방에서, 책을 읽는 일과 책을 살아내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지키며.